2023년 12월 22일 금요일

삼신

 《화엄경》을 보면 부처님의 방광하는 모습,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면서 법문을 하시는 모습, 아주 정말 불가사의한 장면이 많아요. 많은데 게송 두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세존좌도량(世尊坐道場)하시니

청정대광명(淸淨大光明)이

비여천일출(譬如千日出)하야

보조허공계(普照虛空界)로다


우리 부처님은 그래요.

세존좌도량(世尊坐道場)하시니-불세존께서 도량에 앉아계시니, 보리수 하에서 정각을 이루시고 도량에 앉으셨단 말이어요. 보리수하에 앉아 계시잖아요.


청정대광명(淸淨大光明)이-청정한 무량억종광명이,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청정한 무량억종광명이. 불과를 이루셨고 또 당신의 불신보신과 당신의 청정법신이 하나로 되어버렸기 때문에 빛을 내는데 비여천일출(譬如千日出)하야-마치 천 개의 태양이 뜬 것처럼, 천 개가 문제가 아니지요. 


만 개 억 개의 태양이 뜬 것처럼 환하다 그거예요. 비유하자면 백 개도 천 개도 만 개도 더 되는 해가 불쑥 솟아 나오듯 광명이 그렇게 휘황찬란하더라 그거예요.


보조허공계(普照虛空界)로다-그 빛이 허공법계을 두루 비추도다.

현지사 법문을 듣지 못하면, 법신 보신 화신의 법문을 듣지 못하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은 《화엄경》이 방편설이라고 그래요.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불신이, 부처님 몸이 법계에 가득하다 그거예요. 우주에 가득하더라 그거예요. 우주 자체이니까. 부처님께서는 법계에 충만하시다. 이것은 우주자체가 되어버린 몸뚱이인 법신불 이야기를 한 거예요. 붓다가 되면 우주자체가 된 몸뚱이를 하나 지니고 있어요. 우주아(宇宙我)가 된 몸뚱이가 있어요.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을 부르면 부처님이 앞으로 다 가시더라 그거예요. 기가 막힐 일이지요. 널리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나니 기가 막힌 신통이지요. 천만억 중생이 아니라 몇 조(兆)의 중생이라도 부처님을 부르면 그 중생들 앞에 가십니다. 그런 힘이 있습니다. 오직 붓다만이 그렇습니다.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중생의 근기에 따라 어디에나 나아가지만 연(緣)을 따라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시며,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항상 이 보리좌 아래에 계시도다.


여러분 이해하시겠어요? 희유하지요. 이것은 법신 보신 화신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연출한 경전인 《화엄경》입니다. 


그래서 삼신에 대해서 모르면 이 《화엄경》을 읽을 수 없고 《법화경》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도 안 되니까 ‘이것은 전부 비유한 것 아니냐? 방편설 아니냐?’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불교를 오도(誤導)한 것이지요. 


잘못 해석하고 잘못 이야기한 것이지요. 이것은 큰 업이 됩니다. 이것은 업이 되지요. 머리가 좋고 또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불교 대학자가 되었는데 이런 법상에 앉혀 놓으면 그런 못된 말을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극무간지옥에 가고, 무간지옥에 가서 벌을 받고 나오면 부처님께서 “무엇이 되었는지 봐라.” 해서 보면 “돼지로 천 번 나올 것이다. 혹은 또 구렁이로 몇 번 나올 것이다.” 하는 것을 딱 보여준단 말이어요. 그래서 현지사 법문을 들어야 됩니다.

이 스님들이 들어야 됩니다.



신불기17년 불기2558년 갑오년 음력 6.24.

(2014. 7. 20.일) 큰스님 부산 법문  VI-30, 245회




2022년 6월 25일 토요일

 부처님은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가(Ⅱ)

 

 

 

 ‘부처님은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냐?’ 지금의 북방불교, 남방불교, 티베트불교, 한국불교, 일본불교는 부처님이 계시는 것조차도 모릅니다.


《법화경》〈여래수량품 본문8품〉에서 분명히 부처님은 그 수명이 무한하다. 그래서 구원실성을 밝혔지만 그건 학자들의 이야기로(말로) 치부해 버리고, 실제로 수행하는 승려들이나 신도들은 부처님이 어떻게 계시고, 얼마만큼 위대한 어른인지를 모릅니다.

 

다만 학승들은, 지금부터 가장 가까운 저 옛날 2600년 전에 부처님께서 오셔서 다시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45년 동안 중생을 위해서 사시다가 가셨잖아요. 역사 안의 붓다(석가모니불), 80세를 일기로 해서 반열반 하신 그분 밖에 모릅니다.

 

그분만 이야기해요. 그러면《법화경》〈여래수량품〉에 나오는 본화 보살님들,  천만억 이상이 되는 그 많은 본화 보살님들이 땅을 찢고 올라오니까 이제 그에 대해서 본문이 전개되는데, “이 많은 본화 보살은 내가 정말 옛적 옛적 미진겁 전,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佛果)를 이룬 후에 교화해서 보살로 만들어 놓은 대중 보살들이다”하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그렇지만 학자들은 윤회세계(현상세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그 지혜로서는 뚫지를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문학적인 픽션(虛構)으로 보는 거예요.《법화경》이나,《화엄경》이나, 기타 대승경전을 그렇게 봅니다. 


아닙니다. 아주 잘못 본 것입니다. 절대로 픽션이 아닙니다. 비유와 상징으로 말씀한 부분도 있지요. 있지만, 부처님은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佛果)를 이루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를 이루셔가지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81세를 일기로 반열반에 드셨는데 어떻게 되신 거예요? 불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반열반에 들었다, 지금까지 영혼을 부인하는 불교에서는 어떻게 보느냐? 앞에서 말씀드린 비 인격인 공(空, 梵, 마음)으로 돌아갔다, 공(空)에 계합했다, 적멸과 계합했다는 말을 합니다. 그 이상 말도 못해요. 공(空)하고 한 몸이 되어버렸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모든 부처님의 심의식(생각, 마음, 그 인격, 지혜 등)이 공(空)으로 분해 되어가지고 공(空)으로 회귀해버렸다. 이제 비 인격이 되어버렸다는 말이어요. 비 인격이 되어버렸다. 공(空)으로 소멸해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면 그런 부처님이 어떻게 또 다시 사람 몸을 받아옵니까? 우리 부처님은 이 세상에 많이도 많이도 오셨습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수한 본화 보살님들을 양성한 거예요.


여러분, 보살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법위입니다. 지금의 불교에서는 보살도 모릅니다. 어떠한 정도가 보살인지를 모릅니다. 우리 아미타부처님의 말씀을 여러분한테 전합니다. 


“보살, 보살은 하늘의 별따기다. 하늘에 있는 저 별 따기다. 부처님 교단을 만나지 않으면, 불과(佛果)를 이룬 그 성자의 회상, 부처님 회상을 만나지 않으면 보살은 나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몇 달 전에 우리한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자력으로는 보살과를 증오(證悟)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살과를 꼭 증오(證悟)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히 생사에서(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라한 가지고도 삼계를 벗어나고, 자기의 생각이 ‘이제는 사람으로 가지 않으리’ 하면 안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게 되어 있습니다.


《법화경》은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성중, 아라한들에게 붓다 되는 길을 가도록 간곡하게 바라셨습니다. 이것을 일불승(一佛乘)이라고 합니다. 부처님(붓다) 되도록 강하게 권유하신 거예요. 그 길로 들어오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우리가 우리 신도들을 상대로 해서 말씀드리지요.

 

아! 보살, 부처? 부처님 당시에는 보살 부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거리가 멀어. 너무도 먼 이야기야. 그래서 목표를 아라한에다가 둔 거예요. 아라한의 과(果)를 증오(證悟)하도록 지도하신 거예요. 


그때는 3000여 년 전이니 문화 초창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거의 아라한과를 증오(證悟)하도록 목표를 거기에다가 두고 법문 하신 거예요. 그런데 지옥 중생들한테는 그것도 이것도 아니어요. 


지옥중생들한테는 삼악도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설법했습니다. 이것을 삼론설법이라고 합니다. 차제설법(次第說法)이라고도 하는 거예요. 지옥 갈 사람한테 아라한 되라고 하면 됩니까? 또, 보살이 되라고 하고, 부처세계만 이야기하면 됩니까?


그런데 스님이 왜 이렇게 붓다의 세계를 강조하고, 불․보살의 적멸세계 이야기를 가끔 해드리느냐 하면, 지금의 티베트불교라든지,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저쪽 남방불교라든지, 한국 불교라든지 등등 지금의 불교가 부처님이 없다고 해요. 


없다, 혹은 부처님이 있다 없다를 언급 하지 않아요. 모르고 확신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법화경》〈여래수량품〉에 분명히 부처님의 수명을 다룬 거예요.

 

수량은 근본이어요. 이것을 다룬다는 것은 ‘불과(佛果)를 증하면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할 수 없다’는 말이어요. 그런데《법화경》이나《화엄경》이나 여러 대승경전에 부처님의 위덕에 대해서 많이도 말씀했지만, 우리 영산불교에서 적멸의 세계나 붓다․보살의 세계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잖아요. 


이것은 《법화경》이나《화엄경》을 더욱 위대한 경전으로 해주는 작용을(기능을)할 거예요. 많은 소식을 전해주니까요. 우리의 법문을 듣고《법화경》《화엄경》을 보십시오. 모든 경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리무중입니다.

 

불교학 박사도 오리무중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대화하고 상대해 보면 몰라. 모릅니다. 영산불교의 이 법문, 과거생에 누구다 누구다(가섭이다, 아난이다)하고, 금생에 와서 불과(佛果)를 증했다고 하면, 불교인의 양심으로서 그 큰스님을 법좌에 모셔야 되는 거예요. 모시지 않는 다고 하면 그 주체는 업이 됩니다.

 

전번에 어떤 불교TV에 관계하는 책임자 한 분이 스님을 찾아왔어요. 그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 너의TV에 나가고 싶다. 나의 이 청을 받아준다면 너는 큰 공덕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의 청을 묵살한다면 정말로 불행할 것이다. 


네가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말을 했는데 구체적인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불교를 조금 더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수행을 해보고 한 사람들은 내 말을 긍정합니다. 긍정합니다 여러분.


부처님은 계시는지 계시지 않는지, 부처님의 위신력은 어떠한지,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십력이라든지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이라든지, 또 무슨 여러 가지 지혜의 능력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지금에는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치부되고 있습니다. ‘그건 뭐 이야기거리야’ 하는 정도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지나갑니다.

 

정말로 안타깝지요. 그래서 전번에 말씀드린 비아(非我), 이것이 윤회의 주체이고, 그리해서 영혼체가 윤회하는 것이고, 영혼체에 달라붙은 그 오물(찌꺼기)들인 업장 ․ 탐진 삼독 ․ 기타 탁한 기 등이 쏙 빠져버린 자리가 아라한입니다. 여기는 해탈인 거예요. 


더더욱 수행해 들어가면 보살로 가고, 붓다가 되는 거예요. 그 부분, 오늘 부처님 부분, 이 두 주제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그래서 스님이 이렇게 강조 강조합니다. ‘


《법화경》과《화엄경》을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산불교의 자재 만현이 더욱 부연해서 말씀드립니다.

 

▸첫째,《법화경》〈여래수량품〉에 있는 구원실성의 그 경의 말씀을 옳다 하고(나는 긍정하고)


▸둘째, 여러 대승경전에 있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그렇다’라고 하고, 그 경전에 기록 된 것보다 더하다 하는 것을 오늘 확인해 드립니다. 붓다가 되면 왜 영원히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가.

 

(보살은 악도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불퇴전이라고 했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우주의 질서를 역행하면 보살도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스님이 언젠가 저 밀교에다가 쓴 소리를 했습니다. 


사람으로 자꾸 오는데, ‘그러지 말라. 그건 우주질서에 역행하는 것이다. 열시왕의 논죄를 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 부처님, 불과(佛果)를 증하게 되면(붓다가 되면) 크게 세 몸으로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은 몸뚱이가 언제나 하나예요. 윤회하는 이상 몸뚱이는 하나예요. 그렇지만 아라한을 지나고, 보살을 지나고, 붓다가 되면 크게 세 몸으로 이야기 합니다. 세 유형의 몸을 말합니다. 


이것도 맞습니다.《화엄경》에서 십신을 이야기하지만 이 이야기입니다. 삼신이 맞습니다. 자기의 법신불이 저 시공을 초월한(유․무를 초월한) 저 절대계(저 적멸계, 무아속 절대계, 상적광세계)에 생깁니다.

 

그러면 법신불이 뭐냐? 우주의 본체, 즉 스스로 있는 자존자, 우주 본체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존자, 거기에다가 조금 더 부연하면 불생불멸(不生不滅)-영원히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우주에 두루한(遍在한) 실상(자존자), 이렇게 말합니다. 그 우주의 본체와 하나로 계합이 된 몸이 법신불 올시다. 좀 어렵지요. 어려운 이야기이지요.


여러분, 우주라고 하면 우리 불교에서는 삼천대천세계라고 하지요. 삼천대천세계도 오백 천만억 나유타 아승지만큼 많다고 해요. 이 우주공간에는 삼천대천세계도 많아. 그러면 삼천대천세계는 뭣을 말하는가? 


하나의 단위, 곧 지옥, 지옥도 팔만사천지옥, 표현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지옥의 종류도 많습니다. 지옥도 무서운 지옥,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벌 받는 정도에 따라서 다섯으로 나눕니다. 


그렇듯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하늘(천상), 이것을 한 단위로 봐요. 이것이 1,000개 모인 것을 1소천세계라고 해. 이 단위가 1000개 모인 것을 소천세계라고 그래. 소천세계 1000개를 중천세계라고 합니다.

 

1중천세계. 중천세계 1000개가 모인 것을 1대천세계라고 해요. 이것을 삼천대천세계라고 하는 거예요. 이 삼천대천세계가 한 단위입니다. 이것이 무수히 있다는 말이어요. 지금 20세기말 천문학에서 별의 수효를 어떻게 계산하는 줄 아십니까? 1,000억×1,000억도 더 된다고 합니다. 


저 별의 수효가 1,000억×1,000억도 더 돼. 그런데 삼천대천세계는 우리 지구와 거의 비슷한 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건 물질의 세계잖아요. 저 별은 추대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든지 축생이라든지 이런 중생들이 사는 데예요. 지옥, 아귀 혹은 하늘 세계는 허공중에 있어요. 그러니까 이 우주가 얼마나 넓습니까.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이 우주, 스님이 지금 말하고 있는 우주는 어쨌든 현상세계(육도세계) 전부를 포함하고, 거기를 벗어난 해탈세계(무루대아라한이 가는 정토, 보살이 가는 정토, 붓다가 가는 정토인 이 해탈 적멸의 세계)까지 포함을 시켜서 우주법계라고 합니다. 이제 거기를 우주법계라고 하는 거예요.

 

‘우주법계의 근본 본체와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 부처님이오. 법신불이어요.’ 일찍이 이 우주법계 안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먼저 차지한 사람이 주인이어요. 누가 차지하느냐? 부처님이 차지해요. 


우주본체와 하나가 되어버리니까. 이걸 법신불이라고 해요. 그러면 법신불이 생길 그런 정도의 경지는 어느 정도이냐?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 써놨을 거예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정말로 하나도 없이 소멸되어 버려야 돼. 먼지 티끌만큼도 없이 소멸되어 버려야 돼. 이건 붓다 밖에 없어.

 

▸그 다음에 탐진 삼독 108번뇌가 완전히 뿌리 뽑혀져 버려야 돼.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어요. 다겁생으로 저지른 악, 또 습의 기가 있어. 이것이 둘 다 뿌리 채 뽑혀가지고 소멸되었다 하더라도 탁한 기가 있어. 이것까지 전부 먼지 티끌만큼도 남김없이 다 소멸되어 버려야 거기가 무죄(無罪)예요.

 

이제 무죄라고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 써놨지요. 이건 정말로 죄가 없는 거예요. 붓다는 무죄인 거예요. 어느 정도가면 부처님께서 무죄를 선언합니다. 이렇게 되면 저 상적광세계에 자기 법신불을 두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의 법신불은 좀 달라요.

 

부처님의 법신불 이름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입니다. 부처님은 최초 불이어요. 이것도 지금의 불교계에서는 모릅니다.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을 쓸 때 선언한 거예요. 최초 불은 우리 부처님이시다. 그 부처님에 의해서 그 많은 부처님과 본화보살님들과 저 정토보살님들이 쏟아져 나온 거예요. 그 기밀이 있어요. 그런데 말할 수가 없어요.

 

어쨌든 부처님께서는 붓다한테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하십니다. 우리 광명 만덕님께는 법통제자이기 때문에 “태자야!”그러지요. 자재 만현에게는 “아들아!”그럽니다. 여러분, 부처님께서 아들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들 사랑하는 것의 백천만배입니다. 부처님세계의 붓다들의 사이는(관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끈끈합니다. 전부 한 몸으로 봅니다.

 

어느 붓다한테 무슨 일이 있다? 내 몸으로 봐버려요. 한 몸으로 봐버린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섬부주에 와서 불과(佛果)를 갓 증한 붓다를 아기 붓다라고 해요. 


아기 붓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처님과 여러 부처님, 그리고 여러 성중님들, 보살님들이 완전히 겹겹으로 보호해 주고 있어요. 얼마나 지극하신 줄 아십니까?

 

이런 것이 경전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습니다.《법화경》이나《화엄경》에 아무리 봐도 없어요. 스님이 지금 일러드리는 것을 가지고 보면 ‘《법화경》이나《화엄경》이 더욱 위대한 경전이다. 과연 경중의 왕이다’ 하는 것이 이해 될 것입니다. 그런 말이어요.


부처님은 또 한 몸이 있어요. 보신부처님(보신불)입니다. 보신(報身)이라는 것입니다. 보신불이란 무슨 말이냐? 지금의 불교가 정말로 이것을 몰라요. 그러니까 영산불교의 사상이 드러나는 날 우리 불교는 정말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전부 귀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많은 세계불교인들이 전부 쌍수를 들고 귀의하지요. 스님이 말씀드리는 것은 진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어주지 않는 그 사람은 정말로 정말로 불쌍한 사람이지요. 붓다회상을 놓쳐버리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때는 자력으로 가야 됩니다. 자력으로 가는 거요. 자력으로 아라한이 된다는 것, 자력으로 윤회를 벗어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여러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승자다)’라는 말을 하지요. 그 말 알지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다. 그 경지가 아라한입니다. 그런데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면, 이제 자기와의 싸움이 아니라 외마(外魔)와의 싸움이 있습니다. 


자꾸 이런 말씀을 드려서 미안한데, 지금의 불교는 외마를 그냥 환영(幻影)으로 봅니다. 실체로 보지 않고 환영(幻影)으로 봐요. 아닙니다. 외


마가 있습니다. 천마(天魔)도 있고, 용신도 있고, 이매망량신도 있는데, 이거 정말로 무섭습니다. 이것들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됩니다. 적어도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면 정말로 그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의 붓다를 내는 과정 하나만 이야기해 드릴게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하나의 붓다를 내기 위해서 당신의 몸을 버립니다(던집니다). 


마왕 파순이, 혹은 파순이 애제자와 결투하게 되어 있습니다. 붓다를 이룰 사람한테는 그 사람이 반드시 빙의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결투하게 됩니다. 결투장면이 무섭습니다.

 

그렇게 해서 붓다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건 부처님의 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인간,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아라한의 성과를 얻기도 어렵습니다. 깨치는 것도 어렵습니다. 견성 어렵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신부처님을 조금 말씀드리면서 결론내리겠습니다. 보신부처님, 보신불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이냐? 앞에서 말씀드렸지요. 모든 업장이 소멸되고, 탐진의 뿌리가 뽑혀지고, 악과 습의 기가 뿌리 뽑혀지고, 나쁜 인연 나쁜 악연이 전부 단절되고, 천 만억 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원결이 다 해소되고, 금생 전생 과거생에 지은 빚이 다 정리가 되면 무아속 절대계에 자기 불신(佛身)이 생깁니다. 그걸 보신(報身)이라고 합니다.

 

무아속 절대계라는 말은 있다 없다를 초월한, 거기서도 무아속 절대계 올시다. 그 불신(佛身)이 자랍니다. 그 보신불이 자랄 때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청정한 무량광의 기를 먹고 자랍니다. 이것을 말씀드릴게요. 


이것은 정말로 깊은 비밀 올시다. 그렇게 해서 자라기 때문에 보신불의 능력은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우주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거예요. 자비와 지혜를 체득하기 위해서, 자비와 지혜 공덕을 구족하기 위해서 백천만겁을 닦았잖아요.

 

백천만겁을 보살도를 완성했잖아요. 거기에다가 플러스 부처님의 가피(위신력)에 의해서 절대계에 자기 불신(佛身)이 생깁니다. 그런 사람들은 겁에 하나가 나옵니다. 깨친 것이 불(佛)이 아닙니다. 깨치고 보림이 다 끝난 것이 불(佛)이 아닙니다. 


그건 아라한입니다. 완전히 착이 떨어져버렸다고 하더라도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아라한 수천만을 합해도 보살의 가치만 못합니다. 보살 수천만을 합해도 붓다 이룬 분의 가치만 못합니다. 붓다가 더 낫습니다.

 

오늘은 부처님 이야기를 하니까 어차피 여러분한테 들려드립니다. 지금 부처님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너무 떨어진 이야기를 하니까 죄송합니다만, 지금까지 이 부처님이 어떤 분인 줄 몰랐기 때문에 이것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여러분한테 진정 부처님께 귀의하도록 하는 거예요. 


부처님한테 귀의하고 그 신심이 철기둥 같으면 살아요. 산다고 했지요. 아흔아홉 가지를 이루어도 어쩐다고? 부처님에 대한 신심을 잃으면 그 이룬 아흔아홉 가지를 전부 잃는다고 했지요. 그러나 부처님에 대한 신심 하나만 있으면 아흔아홉 가지를 채워준다고 그래요. 그 말씀 맞아요. 이 신심의 진정한 뜻을 몰라요.


이제 정말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몸뚱이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보신불은 눈 코 귀가 다 달렸어요. 


그래야만이 생각을 하고,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내가 어떻게, 언제, 어느 나라 땅, 어떤 부모를 정해서 내가 나가서 다시 불과(佛果)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겠다 하는 것이 되지요. 


그래서 눈 코 귀가 다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서 32상입니다. 지옥중생부터 올라가다가 보면, 우리 인간들은 지옥중생보다도 훨씬 거룩하고 예뻐요. 그러나 우리 인간 세상의 인간들은 하늘 사람(天人)들한테 비하면 사람도 아니어요.

 

또 하늘 사람은 정토보살한테 비하면 거러지야. 정토보살은 해탈신이기 때문에 너무너무도 잘 생겼어요. 빛이 납니다. 정말로 최고인 줄 알아도 붓다한테 비하면 또 애기예요. 그건 또 말도 안 돼. 


이런 부처님, 정말로 한군데만 봐도 쏙 빠져가지고 나올 줄 모를 정도로 잘 생겼어요. 그런데 그런 부처님이 없다고 해요. 아침에 우리 현지사에 오셔서 공양 드신 그 많은 부처님이 없다고 그래. 


이건 큰일인 거예요. 지도자가 그런 말을 하면 중생을 오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업은 무섭다는 것이지. 그런데 그 부처님의 몸은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사람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대체 부처님은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스님이 이야기했지요. 무량억종광, 이것은 불과를 증한 사람만이 알아. 


보살도 전생에 불격을 갖춘 보살이 사람으로 와서 불과를 이룬다고 공부를 할 때 그 무량억종광을 보면, 그런 높은 법위의 수행자도 눈이 멀 지경이어요. 그 수행의 깊이를 언젠가 스님이 이야기해 줬을 거예요. 수행의 깊이를 전번에 이야기해 줬나?

 

오늘 시간이 40분 지났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음 시간으로 미룹니다. 어쨌든 무량억종광, 백종오색광,《법화경》이나《화엄경》등 여러 대승경전에서는 이것을 천 만 억 가지 색깔의 부처님 빛, 나유타하고도 아승지 수만큼 많은 빛깔의 청정한 빛, 이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무량광, 혹은 억종광, 무량억종광, 열반광이라고 했어요.《열반경》에서는 열반광이라고 했어요. 이것으로 부처님의 몸뚱이가 이루어져 있어요. 이 자연의 빛보다도 훨씬 수승한 본원적인 빛이 자성광입니다. 자성광이 드러난 것이 견성이어요. 그것으로 해서(거기에서) 만물이 온 거예요. 이것이 만물의 모체예요. 공(空)입니다.

 

그 자성광은 무량광에 비하면 색깔이나 광도(光度)나 강도(强度)에 있어서 하늘과 땅차이어요. 그 무량억종광은 안팎이 없어. 희유한 것이어요. 색깔의 안팎이 없다는 것은 투명하다는 말이어요. 


투명해요. 안팎이 없는데, 정말로 갖고 싶고, 가지고 놀고 싶을 정도로 예쁘고 깨끗하고 청정해요. 이것으로 부처님의 몸이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은 때에(필요에) 따라서 천 만 억 화신을 낼 수 있잖아요. 이건 엄청난 이야기예요. 왜 그것이 가능 하느냐?

 

대적정삼매를 자유로이 들고 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붓다만이 드는 대적정삼매가 있습니다. 붓다만이 드는 대적정삼매,《아함경》에 나오는 구차제정(九次第定) 끝의 멸진정(滅盡定)은 아라한 삼매예요. 


것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화엄경》을 쓸 수 있는 해인삼매입니다.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 그것하고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 대적정삼매를 자유로이 드시고, 그런 엄청난 선정의(삼매의) 힘이 있고, 당신의 몸뚱이가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빛을 마음대로 방광하는 거예요. 대적정삼매의 힘으로 천백억 화신의 몸을 내는 거예요. 그래서 보신불의 능력은 정말로 무한합니다.


어떤 붓다가 자기의 법신불과 하나가 될 때에는 법계의 주가 됩니다. 더더구나 붓다의 붓다이신 우리 부처님의 원만보신노사나불이 당신의 청정법신비로자나불과 계합이 될 때가 있어요. 


그 부처님의 그 노사나불(불신)과 그 청정법신과 합쳐진 그 부처님은 우주의 주(主)예요. 우주의 힘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 여러분, 이게 불교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청정법신을 모르고 보신을 모르면 불교를 논할 자격이 없는 거요. 2600년 이후 지금까지 그 누구도 몰랐어요. 그리고 수많은 하늘, 성중하늘, 기타 보살국토에 가서 교화하는 화신이 있어요. 


백 천 만억 화신이 있다고 했지요. 화신을 나툴 수 있어요. 또 인간세계에 와서 이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응화신이 있어요.

 

응화신을 응신이라고도 하고, 화신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크게 세 가지의 유(有)인 법신․보신․화신 등 삼신을 구족하고 있어요. 이 삼신을 구족한 분이 붓다예요. 절대계에 자기의 불신(보신)이 없으면 붓다가 아니어요. 


이건 붓다를 가름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된다고 했지요. 그것을 알아주십시오. 

살아계시는지, 살아계신다면 어디에 계시는지, 반열반 후에 어디로 가시는지, 부처님을 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뵙고 법문을 듣고 그 붓다의 세계에 살고 있는 스님은 어떻습니까? 의심이 많이 날 거예요.

 



2010.6.5.토(음4.23)큰스님 춘천 법문

-부처님은 얼마나 위대한 어른이신가(Ⅱ)중 발췌

 

 

2022년 4월 27일 수요일

천만억 화신을 내시는 보신불의 위신력 - 《화엄경》에서 보이는 부처님의 위신력 장면

 


 천만억 화신을 내시는 보신불의 위신력

- 《화엄경》에서 보이는 부처님의 위신력 장면


나는 감히 이 책을 통하여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특히 여러 나라 불교 지도자들에게 우리 교주 불 세존의 거룩하고 희유하신 깊은 삼매력에서 오는 위신력을, 이는 사실이며 픽션이 아니라고 선언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화엄경》에서는 부처님께서는 마갈타국 니련선하尼蓮禪河의 강가 보리수 하에서 대정각을 이루시고 2600년 전 다시 사바세계에서 와서 또 불과를 이루시고 21일간혹은 7일간 깊은 삼매 속에서 삼천대천세계 거의 모든 우두머리 신들과 그 권속들 그리고 수많은 호법 성중들과 상품보살들에게, 문수·보현 등 여러 상수보살들을 통해서 부처님을 공경 찬탄하게 하며 교법을 설하시고, 보광명전, 하늘의 도리천궁5하늘, 야마천궁4하늘, 도솔천궁3하늘, 타화자재천궁1하늘으로 차례로 옮겨가면서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경계, 보·화신報·化身, 삼매, 방광, 자재, 신통, 지행智行, 자비, 거룩하신 32상의 원만 상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재 만현은 주석해설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불경 가운데 경經 중의 왕이라 불리는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불과를 증하시고 난 후 깊은 백천삼매獅子頻伸三昧에 드시어 몸 여러 군데에서 방광하면서 이루어진 화엄의 장면들입니다.

원만보신 노사나불석가모니불의 보신 명칭의 부사의한 경계들입니다. 따라서 《화엄경》의 교주는 형상 없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아니고, 32상을 구족하신 그리고 지혜와 자비를 갖추신 원만보신 노사나불이십니다.

다만 붓다 이룬 이는 무릎을 치며 “옳지, 그렇지!…….”하게 되는 진실한 장면들이라는 것을 강조해 두는 바입니다. 결코 어느 작가의 상상력으로 쓴 픽션허구이 아님을 다시 확언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무상 정각을 이루심에 땅은 금강으로 장엄을 갖추었고, 광명이 두루 비쳐 모두가 기특하고, 보리수는 청정한 유리로 그 밑동이 되었고, 불가사의한 석상石上 사자좌는 갖가지 묘한 보배 꽃으로 장엄하였다. 마니구슬보다 더 빛나는 부처님 광명은…… 운운, 열 세계 티끌 수 같은 큰 보살들, 금강역사들, 천왕·신들이 모여들었고…….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광명이 분사噴射되었다.”

-《화엄경》 <세주묘엄품>

이 같은 장엄한 광경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들 모두가 사실입니다.
《화엄경》의 말씀입니다.

“그때 여래의 위신력으로 사방 일체세계의 수많은 낱낱 남섬부주南閻浮提 밑에 앉으신 데서 각각 보살들이 부처님의 자재 신통하신 힘으로 법을 연설하는데 각자 부처님을 대하였노라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세존께서는 모든 세계의 보리수 아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도리천 수미산에 오르시어 제석의 궁으로 향하시었다.

이때 세존께서 도리천의 묘승전에 드시어 결가부좌하시니 이 궁전이 홀연히 넓어지고 사방의 세계에서도 모두 이와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부처님의 자재하신 위신력으로 수많은 국토의 보리수 아래와, 수미산 꼭대기와, 야마천궁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도솔타천으로 가시어 천왕의 영접을 받으신다.

백만억 꽃 구름으로, 백만억 향으로, 백만억 보배 깃발로, 마음을 기쁘게 하는 백만억 음성으로…… 불 세존께 공양을 드린다. 무수히 많은 정토보살들, 하늘 왕들이 모여와 여래께 공양을 드린다…….

그때 저들 대중이 보니 여래의 몸 낱낱 털구멍에서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 광명이 나오고 그로 인해 부사의한 끝없는 세계를 본다.

토솔타천왕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을 읊는다…….”

이 모든 일들 역시 사실임을 나 자재 만현은 선언하는 것입니다. 윤회 안의 중생들이 사는 세계는 항하의 모래 수와도 같이 많습니다. 

죄업 중생이 가는 지옥, 아귀, 축생세계들이 있고 착한 중생이 나는生 인간, 수라, 하늘천국이 있습니다.

이 육도를 한 단위로 하여 이의 천 배를 1소천세계라 하고, 이 소천세계의 천 배를 1중천세계, 이 중천세계의 천 배를 1대천세계라 하며 이 소·중·대천세계를 합해 삼천대천세계라 합니다.

육체 인간이 사는 곳은 지구남섬부주는 유일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별과 같은 물질세계에는 기체氣體 인간들이 살고 있으며, 윤회 안 허공 중엔 많은 천상세계가 있어 영체하늘 인간들이 삽니다. 윤회 안의 기器세계는 중생들의 업력으로 이루어지고 없어진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윤회 밖에는 여러 부처님들과 보살들의 원력에 의해 많은 정토들이 적멸 속에 건립되어 있습니다.

이 경《화엄경》에서는 최초 불이신 석가모니부처님원만보신 노사나불의 크신 위신력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인도 땅에 오셔서 또 다시 불과를 이루시고 그 위신력으로 삼천대천세계와 윤회 밖 해탈오계, 붓다님들의 세계와 불 보살들의 하시는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이 사는 세계 가운데 남섬부주 지구와 상당히 유사한 세계에 사는 중생들을 위해 각각 보리수 밑에서 대정각을 이루어 적정삼매에 드시는 모습 곧 무수히 많은 석가모니불의 화신을 보여주시면서, 그 보리수 밑을 떠나지 않으시고 도리천 수미산정으로 가십니다.

이때는 불과를 이루시어 절대계에 계신 원만보신 노사나불과 계합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육신의 화신불을 놔두고 보신부처님圓滿報身佛이 도리천궁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신기하기도 합니다. 어느 역사적인 성인이 이렇듯 불가사의한 자재自在 신통을 행했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야마천궁으로 설법 장소를 옮기십니다. 

도리천궁을 떠나셨어도 부처님化身佛은 거기에 그대로 선정에 들어계시고 보살들은 법을 설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도리천궁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당신의 화신을 거기다 그대로 두고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때 삼천대천세계 그 많은 도리천과 같은 국토에도 각각 당신의 화신을 두고 법설을 연출합니다. 

다음 도솔타천, 도솔타천에서 타화자재천으로 설법 장소를 옮기실 때마다 도솔타천을 떠나지 않으시고 또 하나의 화신을 거기 놔두시고 그리고 수많은 도솔타천에도 각기 한 분의 화신들을 놔두시고 타화자재천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원만보신은 동시에 백천만억의 화신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곳에 화신불이 삼매에 드시어 티끌 수 같이 많은 광명을 놓으시는 가운데 많은 상품보살들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 똑같이 여러 화엄법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교주 불 세존은 천상천하에 지존이십니다. 거룩하시고 희유하십니다.

나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깨끗하고 청정한 부처님의 광명을 무량광, 억종광, 백종오색광, 대열반광이라 했습니다. 

《화엄경》《법화경》에서는 무량억 나유타 아승기 광명, 한량없는 억 나유타 아승기 광명, 백천억 묘한 빛 광명,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의 청정한 광명, 한량없고 수없는 빛깔의 광명 등으로 풀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미간에서, 몸에서, 입에서입과 낱낱 치아 사이에서…… 방광하신다 합니다. 사실은 밀장이기에 자세한 말은 아끼고 싶으나 불신 10군데에서 방광을 하는 것만을 말해둡니다.

불신은 티끌 수 같이 많은 억종광명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억종광을 낼 수도 있고 단색을 놓을 수도 있습니다.

아승기 천억 나유타 광명으로 그 보신불의 몸이 이루어져 있고, 원만보신은 천만억의 화신을 나투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것은 네 영혼체가 무아정화된 여여의_心意識의 빛으로 되어 자기 불신 속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적정삼매의 큰 힘이 있어 그러합니다.

여러 대승경에서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이 부처님 광명은 내가여러 차례 소개한 것과 같이 깨끗하고 영롱하며 아름답고 안팎이 없다는 것입니다. 

탐진 삼독, 일체의 번뇌의 뿌리가 다 녹아버리고 다겁생의 업장과 악·습의 기까지 모두 진멸해버려 그렇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수명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무량합니다. 그리고 백천삼매화엄삼매를 자유자재로 드시기에 언제나 환희 속에 여여히 계십니다.

여기서 부연해 드리고자 합니다.

일찍이 불과를 이루신 시방의 부처님붓다들은 역시 위신력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깊은 삼매에 들고, 그 큰 삼매력 때문에 몸의 여러 군데에서 나유타 천억 광명을 낼 수 있습니다.

백으로 천으로 억으로 당신들의 몸을 나누어 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해 드립니다.

영산불교 현지궁 광명 만덕 큰스님도 한두 관문을 통과해 가면 이 거짓 몸뚱이까지 위의 모든 신력神力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붓다의 희유함은 그러합니다. 하물며 붓다 중 붓다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의 위신력은 가히 측량할 길 없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중 발췌
펴낸곳/현지궁 현지사